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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더로드, 시드니 - 12. 그 곳의 길거리와 늦은 밤거리에서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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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더로드, 시드니 - 12. 그 곳의 길거리와 늦은 밤거리에서

pop-up 2015. 12. 9. 21:20



여행의 시작은 때론 그곳의 발전된 도심지역을 살펴보는 일로 시작하기도 한다. 너무 인적이 뜸하고 지나가는 이들이 없으면 괜히 마음이 불안하고 겁이 나는 소심한 심장을 지녀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시드니를 찾았던 날에도 시드니 시티 지역으로 나섰다. 조지 스트리트/George Street 부터 피트 스트리트/Pitt Street 까지 걸으며 다양한 거리의 모습을 담고 괜스레 마음에 드는 카페를 발견하면 들어가 커피 한잔을 시켜놓고 주변의 음식점과 쇼핑몰 등을 검색해보았다. 피트 스트리트 몰이라는 거대한 쇼핑지역이 눈에 들어왔다. 평소에 선호하는 테드 베이커/Ted Baker 부터 패스트 패션으로 유명한 탑샵의 남성 라인 TOP MAN도 근처에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그런데 신나서 들어가서 이것저것 입어보기 바쁘게 카드를 긁던 요즘과는 다르게 그냥 계속 길에서 어디로 향해야 할지 결정하지 못하고 계속 우물거리는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무얼하기 위해 떠나왔던 여행인지부터 분명히 해 두는 것이 좋을 듯 싶었다. 일하는 것이 싫었고, 미래에 대해 고민하는 것이 싫었고, 너무 바쁜 척을 하느라 멀어졌던 친구들과의 관계가 그리워졌다. 여러가지를 다양하게 분배해서 해두었어야 하는데 너무 에너지를 쏟아버리고 있느라 지쳐가고 고갈되어 가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 이번 여행은 아무것도 하지 않기 위해서 무작정 떠나왔던 건데 평소의 모습대로 똑같은 방식으로 무언갈 해야 한다는 생각없는 생각만 머리속으로 이어질 뿐이었나 보다. 낮 시간인데도 쇼핑몰 주변은 사람들이 굉장히 많았다. 다들 분주해보이고. 그러고보니 곧 크리스마스가 다가온다. 블랙프라이데이의 여파인지 여전히 세일 스티커가 붙은 제품들이 제법 눈에 띄었다. 수하물용 캐리어를 새로 바꾸고 싶었는데 그걸 사러가볼까, 나도 모르게 이어지는 쇼핑 생각.


436 George St, Sydney NSW 2000, Australia

myer.com.au / +61 2 9238 9111

hour: Opens at 9:00 AM


어느 덧 퇴근 시간이 가까움에 따라 더욱 많은 사람들이 이곳으로 몰리고 있다. 그러고보니 오늘은 목요일, 쇼핑데이다. 일주일 중에서도 많은 가게들이 늦은 시간까지 영업하고 다양한 길거리 상점들이 열리는 그런 요일, 시드니의 목요일은 그런 날이다. 주말에 계획된 데이트 자리에서 입으려는 원피스를 구입하는 사람, 남편의 낡은 셔츠가 떠올라서 새로 멋스러운 셔츠를 사가는 중년의 부인, 괜스레 할인된 가격에 구입할만한 쓸만한 옷이 있을지 둘러보는 사람 등 모두 바쁘게 각자의 목적을 지니고 이곳을 지나가고 있다. 괜히 나만 아무것도 모른 채, 결정하지 못한 상태로 이 곳에 서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즈음 배가 고프기 시작했다.



[St Mary's Cathedral]

St Marys Rd, Sydney NSW 2000, Australia

stmaryscathedral.org.au / +61 2 9220 0400


근처에 보이던 초밥집에서 간단히 배를 채우고 근처 Hyde Park를 향해서 걸어나섰다. 공원 너머로 성모 마리 성당/Saint Mary's Cathedral이 위치하고 있다. 멀리서 보이는 그 웅장한 느낌에 이끌렸지만 왠지 이 날은 더 이상 가까이 다가서고 싶지 않은 마음에 멀리서나마 사진을 찍고 우측편으로 걸어나가기 시작했다. 왜 이리 마음이 울적한지 모르겠다. 이런 생각을 남겨봤자 무거워지기만 하고 재미없어지는데 털어내고 다른 재미를 찾아보려 해도 쉽사리 마음의 상태가 나아지질 못했다. 다시한번 마음 속으로 떠올릴 뿐이었다. 나는 이 곳에서 충분한 휴식을 갖고 방전된 에너지를 다시 찾아서 즐거운 나의 삶의 방식을 되찾겠다고. 더욱 넓은 생각으로 사람들을 대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배우고 쿨한 사람이 되고 싶었다.



잠시 계단에 앉아 생각에 잠겨있었는데 갑작스런 빗소리에 카메라를 품 안으로 챙겨 들었다. 그런데 아무래도 비 오는 것이 아닌 다른 물소리였다. 작은 분수가 있었다. 각자의 순서대로 서로 높이 올라가보겠다고 기를 쓰며 물을 뿜어내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열심히 살아가는 누군가의 모습 같아 보이기도 했다. 자신이 가진 최대 출력치가 정해져 있음에도, 다른 누군가와 큰 차이가 없어도, 그런 걸 다 아는데도 겨루는 의미없는 다툼 같아 보이기도 했다. 무얼해도 결국 마지막 생각은 의심하고, 누군가를 미워하고, 불만을 갖는 내 모습을 알아차려 버렸다. 겨우 이런 생각이나 하려고 떠나온 것이 아닌데 지금은 우선 이런 생각을 벗어나고 마음을 위로하는 일부터 해야겠단 생각이 들었다. 늦은 시간이니 야경이 근사한 그런 곳에 자리잡고 맛있는 걸 먹으면 기분이 나아지지 않을까? 향해야 하는 곳은 단 한곳. 야경이 멋진 그곳이 머리 속으로 떠올랐다.



 

Great Jewie spot

Milsons Point NSW 2061, Australia


밀슨스 포인트/Milsons Point는 멀리 시티 지역이 보이고 조용하게 앉아서 시간을 보내기에, 생각에 잠겨보기에 나쁘지 않은 곳이라 생각한다. 가끔 술에 취한 불량한 아이들도 나타나기도 하기에 혼자 이곳을 찾는 것은 추천하지 않는다. 늦은 시간에는 인적도 드문 곳이기에 더욱 조심하는 것이 좋다. 그래도 이 곳에 도달해서야 잡스러운 생각들이 물러나는 걸 경험할 수 있었다. 조금은 긴장한 마음 때문에 더욱 생각 정리하는것에 도움이 되는 곳인걸까. 가끔은 작은 위험을 감안하면서 자기 자신을 극으로 밀어붙일 필요가 있다. 극적인 상황에 놓이면 우리 생각은 무척 단순해지는 경향이 있다. 삶에 있어 경중도를 단번에 분류하고, 내가 굳이 할 필요가 없는 일이었단걸 금새 깨닫는다. 생각이 많아지면 하는 행동이 있다. 쉬지않고 산 올라가기. 극도로 가파오는 호흡과 부족한 산소를 조금이라도 더 받아들이려는 뇌와 폐의 다툼은 결국 뇌가 흘러 보내는 신경물질을 통해 평소와는 다른 진중한 결정을 내리게 되는 경우가 있는 듯 싶다.

한자리에서 몇시간 동안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생각에 잠겨 있었다. 가끔 껄렁거리는 동네 아이들이 다가오는 듯 싶다가도 다행스럽게도 큰 방해는 하지 않고 지나갔다. 다양한 생각을 버리고 오는 그런 장소. 이곳이 나에겐 그런 곳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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