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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더로드, 시드니 - 10. 긴장하며 길 위로 나서다, 시드니 시티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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온더로드, 시드니 - 10. 긴장하며 길 위로 나서다, 시드니 시티

pop-up 2015. 4. 4. 02:01

길 위의 이야기, 시작



언제나 그렇듯이 해가 떠오를 즈음 조금은 이르게 눈을 뜨고 누웠던 자리에서 그대로 몸을 일으키고 간단히 몸과 팔을 당기며 잠에서 깨어나려 움직이고 있었다. 뭔가 멋진 장면을 담고 싶은 욕심도 크고 그 장면을 담아서 친구에게 보여주며 그 순간에 느낀 생각과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굉장히 움츠려 있었던 듯 싶다. 직장을 그만두고 반년 정도의 여유를 가지기로 마음 먹었는데 제대로 즐기는 방법도 모르고 여행을 즐기는 법에 대해서도 서투른 그런 흔한 30대 초반의 남자. 모두들 분명 지금 이 순간에도 삶의 질을 높이려고 부단히 노력하고 야근을 불사하며 달리고 있을 터인데, 난 지금 이곳에서 무엇을 하려고 길 위로 나선 것인지 헤매다가 바보 같은 표정만 계속 지을 뿐이었다.



그렇게 멍한 마음으로 걷다가 무심하게 건너편 위를 쳐다보니 독특한 양식의 건물과 시계가 눈에 들어왔다. 시간에 대해서 고민하던 차에 시계가 눈에 들어오니 감정은 더 복잡해졌다. 물론 당시에는 고민거리 만큼이나 여행을 떠났다는 것 자체로 들떠 있었지만 감정기복이 심한 사람답게 안절부절하며 즐기지도 못하고 어디로 향해야 할지도 모른 채 무작정 걷기 시작했다.

분명 집 근처 역에서 트레인을 타고 시티로 향할 때 오페라하우스를 봤는데 어느 방향으로 가야 그곳에 도착할지 감도 오지 않고, 미리 알아본 정보에 의하면 모바일 데이터를 사용하려면 선불 유심/Prepaid usim 칩을 구입해야 하는데 어딜 들어가야 구매할 수 있는지 눈에 들어오지도 않고 선뜻 매장에 들어가기도 왠지 모르게 주저하기도 하고... 이런 자신의 모습에 낯선 기분이 들었다.



계속 걷기만 하다 넓직한 광장을 발견했다. 특정한 이정표 없이 계속 걷다가 그제서야 갈증을 느끼고 가방에 챙겨두었던 생수병과 초코바를 꺼내 벤치 의자에 앉아 허겁지겁 마시며 배 속을 채웠다. 가만히 앉아 먹다보니 갑자기 갈매기들이 근처를 어슬렁거리기 시작했다. 그러고보니 이곳엔 비둘기가 보이지 않고 그 자리를 갈매기와 부리가 길고 희고 검은 이름 모를 큰 새가 채우고 있다. 별 것 아니지만 이런 것에도 괜스레 수다를 떨고 싶어진다. 갈매기의 경우 시드니 피쉬마켓에서 더욱 극성이다. 야외 자리에서 언제나 사람들의 행동을 주시하며 조금이라도 방심하는 순간 사람들이 먹고 있는 음식을 낚아 채 가기 일수다. 사람을 직접 공격하는 장면은 목격하지 못했지만 아마도 혼자 떨어진 사람은 녀석들의 타겟이 되는 건 아닌지 조금은 무서운 상상도 머리 속으로 떠올랐다.



찬찬히 주변을 둘러보던 중 각자 다양한 모습으로 시간을 보내고 있는 사람들을 발견했다. 책을 읽는 남자, 과한 멋을 내지 않아도 인생의 멋이 담긴 아저씨, 그런 그의 눈치를 살피우던 갈매기, 카메라를 들고 있던 나를 째려보며 걸어가던 조금은 무서운 사내들을 만나고 담으며 잠시의 휴식을 즐기고 있었다. 간혹 바람이 불면 머리 위로 스쳐 지나던 보라빛의 꽃잎들, 굉장히 큰 나무였다. 한국에서는 한번도 보지 못했던 나무였다. 지금 코로 느껴지는 이 냄새가 이 나무 꽃의 향기인지, 이 땅만의 독특한 내음인지 여전히 알 수 없지만 아마도 다시 한번 그 향을 맡으면 이 곳이 절로 떠오르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잠겨보기도 한다.



또 다시 특별한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이곳으로 저곳으로 걷기 시작했다. 왠지 처음엔 이래야만 할 것 같은, 이렇게 아무 곳으로나 향하다가 눈길이 멈추는 장소를 발견하면 사진으로 담으며 그 거리의 이름, 눈에 띄는 가게 내지 식당, 무엇을 하는 곳인지 혹은 좀 더 정보를 찾아보고 다시 찾을 것인지 결정하기로 했다. 참 다양한 각 식당의 간판과 심볼. 평소에 멋진 활자의 그래픽 물이나 명함 등을 발견하면 모아두는 편인데 이곳에서도 그것들을 담으며 또 다시 수집욕을 불태우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다. 



또 다른 길로 향하던 중 매우 친숙한 로고를 달고 있는 애플 스토어를 발견했다. 애플 기기를 좋아하기에 고민할 것도 없이 길을 건너 안으로 들어갔다. 때마침 새로운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출시한 시기였고, 한국 출시 전이었기에 새로운 디자인의 아이폰이 전시된 공간으로 향했다.

정말 갖고 싶다. 갖고 싶으면 뭐? 사야 된다. 근처에 서 있던 파란 유니폼 셔츠를 입고 있던 직원에게 도움의 눈빛을 보내니 웃으며 다가오더라. 


"이거 플랜 없이 기기만 구입할 수 있어?"

"음, 지금은 재고가 없는 걸. 그런데 여기 말고 West Field Hornsby로 가면 곧바로 살 수 있을거야. 하하"


그냥 무언가 나를 위한 선물을 구입하고 싶었다. 그래서 샀다. New iPhone.



무작정 걷기만 하다 보니 점점 재미가 없어졌다. 여행 철칙 중의 하나가 나만의 장소를 발견하자는 것인데 기약 없이 앉아 책을 읽건, 생각에 잠기건 또 다른 무언가를 하고 싶은 장소를 아직 발견하지 못했다. 시티 지역 구석구석을 모두 보려다 보니 어느 새 날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하늘을 보니 구름도 갑작스레 몰려들고 금새라도 비를 쏟아낼 듯한 분위기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여행길에서 비를 참 많이 만나는 편이다. 그런데 긴 비가 아니라면 반가운 경우가 많았다. 잠시 쏟아낸 다음에 차분해지는 그 느낌. 슬며시 올라오는 흙 냄새와 한층 깨끗한 느낌의 공기, 잎사귀나 난간 등에서 떨어지는 빗방울 소리가 무척이나 마음을 설레게 만들곤 한다.

그런데, 막상 호주의 소나기를 만나고 나니 조금은 다른 생각이 들었다. 정말 물을 쏟아붓는 소나기가 무엇인지 처음 맛보았다. 지난 여름 홍콩에서 만났던 소나기도 만만치 않았는데 시드니의 소나기는 무서운 기세로 달려드는 야생의 또 다른 존재인 듯 느껴졌다. 



서서히 사그라들던 비를 맞으며 공원 한 구석에 있던 분수대 근처에서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외로운 느낌이 드는 여행은 처음이었다. 마치 이별한 연인을 잊기 위해 어디론가 떠나온 사람의 마음이 이랬을까, 그리운 사람이 없는데도 괜스레 마음이 저리고 편치않은 생소한 그런 마음. 생각해보니 이곳으로 떠나기로 마음 먹었던 이유 중의 하나가 마음의 치유였던 것도 있었다. 숲과 나무, 동물을 좋아하는데 스케일이 다른 새로운 곳을 만나면 아마도 충전이 많이 되지 않을까? 라며 기대했던 부분도 있기에 선택했던 이유도 있다. 그런데 정말 서서히 아물어가는 듯한 생각이 들던 그런 곳. 그 길이 바로 시드니였다.



이 곳에 더욱 빨리 동화되기 위해 이 곳에서 파는 옷으로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교체하기 위해 이 날 밤의 쇼핑은 시작되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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